전고체·리튬황 배터리 | eVTOL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7편에서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다뤘습니다. 에너지 밀도 250~300Wh/kg, 사이클 수명 1,000~2,000회, 열폭주 위험. 이 숫자들로 eVTOL이 날 수는 있지만, 사업적으로 성립시키기에는 빠듯합니다. 항속거리가 짧고, 배터리 교체가 잦고, 안전 마진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중요합니다. 전고체(Solid-State), 리튬황(Li-S), 실리콘 음극(Silicon Anode) 등 차세대 기술이 실현되면 eVTOL의 경제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배터리 전문가가 아니므로 화학 반응 메커니즘을 깊이 설명하기보다, 투자자가 알아야 할 핵심 포인트와 타임라인의 현실성에 집중하겠습니다. 기술 로드맵을 소프트웨어 릴리즈 사이클처럼 읽어보겠습니다. 약속한 일정과 실제 딜리버리 사이의 갭이 핵심입니다.
실리콘 음극 — 가장 가까운 현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음극(Anode)은 주로 흑연(Graphite)으로 만듭니다. 실리콘 음극은 이 흑연을 실리콘으로 대체하는 기술입니다.
실리콘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론적 용량이 흑연의 약 10배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무게의 음극에 10배 더 많은 리튬 이온을 저장할 수 있다면, 배터리 전체의 에너지 밀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현실적으로 실리콘을 일부 혼합(흑연+실리콘)하는 방식으로 셀 에너지 밀도를 300~400Wh/kg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실리콘은 충방전 과정에서 부피가 약 300~400% 팽창합니다. 충전하면 부풀고 방전하면 줄어드는 것을 반복하면서 물리적으로 부서집니다. 이 문제가 사이클 수명을 급격히 줄입니다. 현재 업계는 나노 구조, 산화실리콘(SiOx) 활용, 바인더 개선 등으로 이 문제를 완화하고 있으나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실리콘 음극은 "가장 빠르게 현실화될 차세대 기술"입니다. 이미 일부 전기차에 소량의 실리콘이 혼합된 음극이 적용되고 있고, eVTOL 기업 중에서도 실리콘 음극 배터리를 테스트하는 곳이 있습니다. 다만 항공용으로 인증받으려면 수천 사이클의 안정성을 입증해야 하므로, 자동차보다 적용이 느릴 수 있습니다.
- 현실적 타임라인: 2026~2028년 eVTOL 시험 적용, 2028~2030년 양산 적용 가능성.
전고체 배터리 — 꿈의 기술, 현실까지의 거리
전고체(Solid-State) 배터리는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는 기술입니다. "왜 액체를 고체로 바꾸려 하는가?"에 대한 답은 세 가지입니다.
- 첫째, 안전성. 현재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은 가연성입니다. 열폭주 시 전해질이 발화하면서 화재가 발생합니다. 고체 전해질은 불에 타지 않으므로 열폭주 위험이 근본적으로 줄어듭니다. 항공기에서 이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 둘째, 에너지 밀도. 고체 전해질을 쓰면 리튬 금속 음극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리튬 금속은 실리콘보다도 에너지 밀도가 높아서, 이론적으로 셀 에너지 밀도 400~500Wh/kg 이상이 가능합니다.
- 셋째, 사이클 수명. 고체 전해질이 리튬 덴드라이트(충전 시 음극 표면에 자라는 나뭇가지 모양의 리튬 결정)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면, 수명이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합니다. 더 안전하고, 더 가볍고, 더 오래 갑니다. 그런데 왜 아직 안 나왔을까요?
개발자로서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아키텍처"가 실제 프로덕션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로 계속 밀리는 경우. 전고체 배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체 전해질의 이온 전도도가 액체보다 낮아서 충방전 속도가 느리고, 고체-고체 계면에서 접촉 저항이 커서 성능이 이론치에 훨씬 못 미치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량 생산 공정도 기존과 완전히 달라서 양산 비용이 매우 높습니다.
토요타, 삼성SDI, QuantumScape 등 여러 기업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지만, 양산 시점은 계속 연기되어 왔습니다. "2025년 양산"이라고 했던 기업이 "2027년 소량 생산"으로, 다시 "2028년 이후"로 밀리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 현실적 타임라인: 자동차용 소량 양산 2027~2029년 예상. eVTOL 항공 인증 적용은 2030년 이후.
리튬황 배터리 — 가볍지만 오래 못 간다
리튬황(Li-S) 배터리는 양극(Cathode)에 황을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황은 지구상에 풍부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이론적 에너지 밀도가 약 2,600Wh/kg으로 현재 리튬이온의 5~8배입니다.
"그러면 이걸 쓰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사이클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충방전을 반복하면 황이 녹아서 전해질로 빠져나가는 "폴리설파이드 셔틀(Polysulfide Shuttle)" 현상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용량이 빠르게 감소합니다. 현재 연구실 수준에서 100~500사이클 정도이며, 항공용으로 필요한 수천 사이클에는 크게 못 미칩니다.
리튬황은 eVTOL보다 드론, 성층권 항공기, 군사용 등 "사이클 수는 적어도 되지만 무게가 중요한" 용도에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현실적 타임라인: eVTOL 상용 적용은 2032년 이후로 보는 것이 현실적.
기업별 배터리 파트너십이 말해주는 것
eVTOL 기업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개발하지 않습니다. 외부 배터리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급받는 구조입니다. 이 파트너십을 보면 각 기업의 배터리 전략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 어떤 배터리 공급사와 제휴했는지, 그 공급사의 기술 수준이 어떤지가 기체 성능의 천장을 결정합니다. 이 정보는 주로 기업의 보도자료, SEC Filing의 파트너십 공시, 컨퍼런스 콜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보도자료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양산 물량 계약이 아니라 공동 연구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SEC Filing에서 구체적인 공급 물량, 가격 조건, 이행 일정이 명시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실질적인 파트너십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 기술 발전 속도의 현실
배터리 기술은 소프트웨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발전 곡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코드를 고치면 다음 배포에 바로 반영됩니다. 배터리는 화학과 물리학의 한계 안에서 점진적으로 개선됩니다. 무어의 법칙처럼 2년마다 성능이 2배가 되는 세계가 아닙니다.
역사적 데이터를 보면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연간 약 5~8% 개선되어 왔습니다.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현재 300Wh/kg에서 2030년에 400~450Wh/kg, 2035년에 500~600Wh/kg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점진적 개선 속도가 eVTOL 산업의 성장 속도를 결정합니다. "혁신적 배터리가 내일 나온다"는 기대보다, "연 5~8% 개선이 꾸준히 이어지느냐"가 더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Soo's View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꿈의 기술"과 "현실의 기술" 사이에 긴 골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자라면 익숙한 개념인 "죽음의 골짜기(Valley of Death)"가 배터리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연구실에서 데모하는 것과 양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eVTOL 투자에서 배터리 관련하여 적용하는 원칙은 이렇습니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사업이 성립하는지를 먼저 봅니다. "차세대 배터리가 나오면 달라질 겁니다"라는 전제에 의존하는 사업 모델은 리스크가 높습니다. 차세대 기술은 보너스이지, 전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차세대 배터리가 실현되었을 때 추가 업사이드가 얼마나 되는지도 계산해둡니다. 에너지 밀도가 400Wh/kg이 되면 항속거리가 몇 km 늘어나고, 그러면 몇 개 노선이 추가되며, 매출이 얼마나 증가하는지. 이런 시나리오 분석을 시리즈 5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기술의 약속을 맹신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것. 그 사이에서 숫자로 판단하는 것이 개발자 투자자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책 조항: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본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필자는 eVTOL 섹터에 포트폴리오의 10~20%를 배분하고 있으나, 개별 종목 보유 여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 시리즈 2 — "비전공자가 파헤치는" eVTOL 핵심 기술
- 7편: eVTOL 배터리,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 ✅ 8편: 전고체·리튬황 배터리 | eVTOL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 9편: eVTOL은 어떻게 뜨는가 | 모터·전력 시스템 구조 입문
- 10편: 자율비행 eVTOL | 파일럿 없는 하늘택시의 기술 난이도
- 11편: eVTOL 사고 나면? | 안전성을 숫자로 따져본다
- 12편: eVTOL은 뭘로 만드나 | 탄소복합재와 경량화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