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폭주는 왜 옆 셀로 번질까? 세 개의 온도 문턱

셀 하나가 고장 나면 그 셀만 버리면 될까요. 리튬이온 배터리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뜨거워진 셀은 바깥에서 열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더 많은 열을 만들고, 그 열이 맞닿은 옆 셀을 똑같은 상태로 밀어 넣습니다. 번지는 속도가 아니라 번지느냐가 설계의 관건입니다.

최종 검증 2026-09-08

원통형 리튬이온 셀 두 종류. 지름 18밀리미터와 21밀리미터 규격으로, 항공 배터리팩도 이런 셀을 수백 개 묶어 만든다
원통형 리튬이온 셀 두 종류. 지름 18밀리미터와 21밀리미터 규격으로, 항공 배터리팩도 이런 셀을 수백 개 묶어 만든다 사진: Sevenethics, CC0

열폭주는 정확히 무엇인가?

열폭주는 배터리 셀이 내는 열이 셀이 버리는 열보다 많아져, 온도가 스스로 계속 올라가는 상태입니다.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것과 다릅니다. 난로는 장작을 넣지 않으면 꺼지지만, 열폭주에 들어간 셀은 외부에서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계속 뜨거워집니다.

원인은 셀 안에 연료와 산화제가 함께 들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음극의 흑연과 전해액은 탈 수 있는 물질이고, 양극 재료는 높은 온도에서 산소를 내놓습니다. 평소에는 얇은 막들이 이 둘을 갈라놓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배터리 화재는 소화 방식부터 다릅니다. 산소를 끊는 방식이 잘 듣지 않는 이유와 이착륙장 소방이 달라지는 지점은 배터리 화재와 연료 화재를 비교한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온도는 어떤 문턱을 넘는가?

한 번에 불이 붙는 것이 아니라 문턱을 차례로 넘습니다. 첫 문턱은 섭씨 80도 부근입니다. 음극 표면을 덮고 있는 얇은 보호막이 분해되기 시작하고, 그 반응 자체가 열을 냅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없습니다.

두 번째 문턱은 130도 안팎입니다. 양극과 음극 사이를 막고 있던 분리막이 녹으면서 두 극이 직접 닿습니다. 내부 단락이 생기면 저장된 전기 에너지가 한꺼번에 열로 바뀌고, 온도가 급격히 뜁니다.

세 번째 문턱은 200도 이상입니다. 양극 재료가 분해되며 산소를 내놓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공기를 막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셀 안에서 연료와 산소가 함께 나오기 때문입니다.

열폭주가 넘는 온도 문턱보호막 분해 80도, 분리막 용융 130도, 양극 산소 방출 200도.THERMAL RUNAWAY세 번의 문턱을 넘으면스스로 타오른다Three thresholds, then it feeds itself일반 리튬이온 셀 기준 · 화학 조성과 충전 상태에 따라 달라짐Typical Li-ion values. Varies by chemistry and state of chargeeVTOL Lab80°C · 보호막 분해 SEI breakdown1단계 자가 발열Self-heating begins130°C · 분리막 용융 separator melt2단계 내부 단락Internal short200°C · 양극 산소 방출 oxygen release3단계 되돌릴 수 없음Point of no return
열폭주에서 셀이 차례로 넘는 세 온도 문턱을 눈금으로 비교한 카드. 보호막 분해 약 80도, 분리막 용융 약 130도, 양극 산소 방출 200도 이상

세 값은 화학 조성과 충전 상태에 따라 오르내립니다. 완충에 가까울수록 문턱은 낮아지고, 넘어간 뒤 나오는 열은 많아집니다. 항공용 배터리가 착륙 뒤에도 만충으로 세워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왜 이웃 셀까지 끌고 가는가?

한 셀이 500도를 넘으면 그 셀은 이제 난로가 됩니다. 열은 세 갈래로 옆으로 갑니다. 셀 껍데기가 맞닿은 곳으로 전달되고, 뜨거운 가스가 빠져나가며 주변을 데우고, 불꽃이 있으면 복사열이 더해집니다.

이웃 셀이 앞서 말한 첫 문턱만 넘으면 같은 과정이 그 셀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도미노와 구조가 같습니다. 다른 점은 쓰러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셀 하나가 다음 셀을 밀어내기까지 수십 초에서 수 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 시간차가 설계의 여지입니다. 다음 셀이 문턱에 닿기 전에 열을 빼내면 전파가 멈춥니다. 전기 항공기의 열관리 설계가 냉각뿐 아니라 고장 상황의 열 이동까지 함께 다루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NASA, Thermal Management System Design for Electrified Aircraft, 2020).

항공 배터리는 전파를 어떻게 막는가?

첫째는 거리와 벽입니다. 셀 사이에 틈을 두거나 열을 잘 견디는 판을 끼워 전달 경로를 끊습니다. 다만 틈을 넓히면 팩이 커지고 무거워집니다. 무게가 곧 항속거리인 항공기에서는 이 맞바꿈이 특히 날카롭습니다.

둘째는 열을 담아 두는 재료입니다. 상변화 물질이나 금속 방열판을 넣어 순간적으로 나오는 열을 흡수합니다. 셋째는 가스 배출 통로입니다. 뜨거운 가스가 이웃 셀을 지나지 않고 팩 밖으로 곧장 나가도록 길을 미리 내 둡니다.

넷째는 감시입니다. 배터리 관리 장치가 셀별 전압과 온도를 보다가 이상 조짐이 보이면 그 구획을 떼어 냅니다. 다만 열폭주에 들어선 뒤에는 전기를 끊어도 화학 반응은 계속됩니다. 감시는 예방 수단이지 진압 수단이 아닙니다.

노트북 배터리 내부. 원통형 셀 여러 개가 나란히 붙어 있어, 한 셀의 열이 옆 셀로 넘어가기 쉬운 배치를 보여 준다
노트북 배터리 내부. 원통형 셀 여러 개가 나란히 붙어 있어, 한 셀의 열이 옆 셀로 넘어가기 쉬운 배치를 보여 준다 사진: Lead holder, CC BY-SA 3.0

항공 배터리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전기차 배터리도 같은 문제를 겪습니다. 그런데 전기 수직이착륙기는 조건이 더 빡빡합니다. 이륙과 착륙에서 아주 큰 출력을 짧게 뽑아 쓰고, 그 사이 배터리 온도가 크게 오릅니다. 뜨거운 상태에서 곧바로 다시 충전하면 문턱까지의 여유가 줄어듭니다.

무게 제약도 겹칩니다. 전기 항공기용 배터리는 비에너지, 출력, 충전 속도, 수명, 안전이라는 다섯 조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고, 이 조건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 연구에서 반복해 지적됐습니다(Yang 외, Joule, 2021). 안전 여유를 두껍게 하면 무거워지고, 가볍게 만들면 여유가 얇아집니다.

급속충전은 이 긴장을 한 번 더 조입니다. 도심 운항은 회차 시간을 짧게 잡아야 수지가 맞는데, 빠르게 넣을수록 셀 내부 온도와 국부 발열이 커집니다. 승온을 제어하며 충전하는 방식이 연구되는 배경입니다(Liu 외, eTransportation, 2021). 지상 설비 쪽 조건은 충전기와 전력망을 다룬 글에 정리해 뒀습니다.

뉴스에서 무엇을 확인하면 되는가?

새 배터리가 안전하다는 발표를 볼 때는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 셀 하나의 성질인지 팩 전체의 성질인지. 셀 단위 시험만으로는 전파를 막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시험 조건입니다. 충전 상태와 주변 온도, 강제로 고장을 일으킨 방법이 함께 적혀 있어야 비교가 됩니다.

셋째, 전파 차단 여부를 명시했는지 봅니다. 셀 한 개를 강제로 열폭주시켰을 때 이웃 셀로 번지지 않았다는 결과가 가장 중요한 항목입니다. 전고체 배터리를 다룬 글에서 짚었듯, 재료가 바뀌어도 이 시험은 그대로 남습니다.

다음 질문

배터리 무게가 왜 그렇게 줄지 않는지는 셀 성능과 팩 구조를 나눠 봐야 보입니다. 에너지 밀도의 뜻을 정리한 글이 그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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