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비행 eVTOL | 파일럿 없는 하늘택시의 기술 난이도
eVTOL의 최종 목표 중 하나는 파일럿 없는 자율비행입니다. 파일럿이 탑승하지 않으면 좌석 하나를 승객에게 줄 수 있고, 인건비가 절감되며, 운항 스케줄링의 유연성이 높아집니다. 경제성 측면에서 자율비행은 eVTOL 사업 모델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요소입니다.
자율주행차 관련 뉴스를 몇 년째 봐왔던 입장에서, 자율비행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자율주행도 아직 못 했는데 자율비행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의외의 관점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도로보다 오히려 자율 운항에 유리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율주행보다 자율비행이 쉬울 수 있는 이유
직관에 반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도로에는 보행자, 자전거, 다른 차량, 공사 구간, 신호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넘쳐납니다. 자율주행차의 AI는 이 모든 변수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에지 케이스(Edge Case)의 종류가 사실상 무한합니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오거나, 공사 신호가 손으로 그려진 종이라거나, 도로 위에 이상한 물체가 있거나.
하늘은 다릅니다. 지정된 항로(Corridor)를 따라 비행하고, 장애물은 다른 항공기와 빌딩 정도이며, 보행자나 자전거가 없습니다. 통제 변수가 도로보다 훨씬 적습니다. 날씨와 바람이라는 변수가 추가되지만, 이것은 기상 데이터로 예측 가능한 영역입니다.
개발자 관점에서 정리하면, 자율주행은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의 AI 판단" 문제이고, 자율비행은 "통제된 환경에서의 자동화"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단순화이고, 자율비행에도 충분히 어려운 기술 과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자율비행 레벨 — 어디까지 왔는가
자동차 업계에 자율주행 레벨(SAE Level 0~5)이 있듯이, 항공에서도 자율성 수준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통일된 레벨 체계는 아직 없지만, 대략적으로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파일럿 수동 조종. 파일럿이 모든 비행 조작을 직접 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eVTOL 초기 운항이 이 단계를 목표로 합니다.
- 파일럿 + 자동화 보조. 파일럿이 탑승하되, 이착륙·순항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 시스템이 수행합니다. 파일럿은 감시자 역할에 가까워집니다. 현재 여러 기업이 이 수준의 자동화를 개발 중입니다.
- 원격 파일럿. 기체에 파일럿이 탑승하지 않지만, 지상에서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개입합니다. 군사용 드론에서 이미 사용 중인 개념입니다.
- 완전 자율비행. 사람의 개입 없이 AI가 모든 비행을 수행합니다. EHang이 이 단계를 최종 목표로 하고 있으며, 중국 CAAC에서 자율비행 eVTOL로서의 형식인증을 획득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유럽 기업은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단계에서 상용 운항을 시작하고, 점진적으로 자율화 수준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FAA는 완전 자율비행 eVTOL의 상용 운항을 아직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핵심 기술 요소
자율비행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인지(Perception).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센서 시스템입니다.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ADS-B(다른 항공기 위치 수신), 기상 센서 등이 포함됩니다. 자율주행차와 유사하지만, 3차원 공간에서 작동해야 하므로 센서 배치와 데이터 퓨전이 더 복잡합니다.
- 판단(Decision-Making). 센서 데이터를 종합하여 비행 경로를 결정하고,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AI 알고리즘입니다. 다른 항공기와의 충돌 회피(DAA, Detect and Avoid), 기상 악화 시 대체 경로 설정, 비상 착륙지 선정 등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 제어(Control). 판단 결과를 실제 비행 동작으로 변환하는 비행 제어 시스템입니다. 9편에서 다룬 FCC가 이 역할을 합니다.
이 세 요소가 모두 항공 인증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특히 안전성이 중요한 항공 분야에서는 "99%의 정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항공기 수준의 안전 기준은 치명적 사고 확률이 10억 비행 시간당 1회 미만(10⁻⁹)이어야 합니다.
EHang — 자율비행의 선두주자, 하지만
EHang은 현재 자율비행 eVTOL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입니다. 파일럿이 탑승하지 않고 승객만 타는 완전 자율비행 기체(EH216-S)로 CAAC 형식인증을 획득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투자자 관점에서 몇 가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중국 CAAC의 인증 기준과 FAA·EASA의 기준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CAAC 인증이 자동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운항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EHang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별도의 FAA 인증이 필요하고, 이 과정은 상당히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또한 EH216-S는 멀티콥터 방식으로 항속거리가 약 30km, 속도가 약 130km/h입니다. 자율비행이라는 기술적 차별점은 명확하지만, 기체 성능 자체는 틸트로터 방식의 Joby나 리프트앤크루즈의 Archer에 비해 제한적입니다.
자율비행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자율비행 기술의 확보 여부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 매우 큽니다.
현재 eVTOL 운영비에서 파일럿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파일럿을 제거하면 운영비가 20~30% 절감될 수 있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또한 파일럿 탑승 석을 승객석으로 전환하면 좌석당 매출이 증가합니다.
다만 이것은 장기(2030년 이후) 이야기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파일럿 탑승 모델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규제 당국도 이를 전제로 인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율비행이 실현되면 이 기업의 경제성이 확 좋아집니다"라는 주장은 맞지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불확실합니다.
Soo's View
자율비행에 대한 저의 관점은 "장기 옵션(Long-term Option)"입니다.
자율주행 업계를 몇 년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규제적으로 허용되는 것 사이에는 수년의 갭이 있다는 것.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가 기술적으로 상당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규제적으로 완전 자율주행이 허용된 지역은 극히 제한적인 것처럼 말이죠.
eVTOL도 같은 패턴을 따를 것으로 봅니다. 기술은 2020년대 후반에 준비되더라도, 규제 허용은 2030년대에나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eVTOL 기업을 평가할 때 자율비행 역량을 "현재 가치"가 아니라 "미래 옵션 가치"로 봅니다. 자율비행 기술을 가진 기업은 규제가 열리는 순간 비용 구조가 극적으로 개선되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그 옵션의 행사 시점이 불확실하므로, 이것 때문에 현재 주가에 과도한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건 위험할 듯 싶습니다.
면책 조항: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본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필자는 eVTOL 섹터에 포트폴리오의 10~20%를 배분하고 있으나, 개별 종목 보유 여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 시리즈 2 — "비전공자가 파헤치는" eVTOL 핵심 기술
- 7편: eVTOL 배터리,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 8편: 전고체·리튬황 배터리 | eVTOL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 9편: eVTOL은 어떻게 뜨는가 | 모터·전력 시스템 구조 입문
- ✅ 10편: 자율비행 eVTOL | 파일럿 없는 하늘택시의 기술 난이도
- 11편: eVTOL 사고 나면? | 안전성을 숫자로 따져본다
- 12편: eVTOL은 뭘로 만드나 | 탄소복합재와 경량화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