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TOL 무엇으로 만드나? | 탄소복합재와 경량화의 물리학



시리즈 2의 마지막 글입니다. 배터리(7~8편), 모터(9편), 자율비행(10편), 안전성(11편)을 다뤘고, 이번에는 기체 자체를 구성하는 소재 이야기입니다.

eVTOL에서 소재가 중요한 이유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무게가 곧 성능입니다. 7편에서 배터리의 "무게 나선(Weight Spiral)"을 설명했는데, 기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체가 1kg 가벼워지면 그만큼 배터리를 덜 싣거나, 같은 배터리로 더 멀리 날 수 있습니다.

개발자에게 익숙한 비유로 하면, 코드 최적화와 같습니다. 불필요한 의존성을 줄이고 코드를 가볍게 만들면 실행 속도가 빨라지듯, 기체 무게를 줄이면 비행 성능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코드 최적화에 한계가 있듯이, 기체 경량화에도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왜 알루미늄이 아닌가

기존 항공기의 주재료는 알루미늄 합금입니다. 가볍고, 강하고, 가공이 용이하며, 수십 년간의 항공 사용 이력이 있어서 신뢰성도 검증되었습니다.

그런데 eVTOL 기업 대부분은 알루미늄이 아닌 탄소섬유복합재(CFRP, Carbon Fiber Reinforced Polymer)를 주재료로 선택합니다. 이유는 무게 대비 강도(비강도)입니다.

알루미늄 합금의 밀도는 약 2.7g/cm³, 인장 강도는 약 450~600MPa입니다. CFRP의 밀도는 약 1.5~1.6g/cm³, 인장 강도는 1,500~3,000MPa 이상입니다. 밀도는 절반 이하인데 강도는 수 배 높습니다. 같은 강도의 구조물을 만들면 CFRP가 알루미늄보다 40~60% 가볍습니다.

무게 차이가 eVTOL에서는 결정적입니다. 기체 구조물이 전체 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이므로, 소재를 바꾸는 것만으로 전체 무게의 8~18%를 줄일 수 있습니다. 8편에서 다뤘듯이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8% 올리는 것은 수년이 걸리지만, 소재 전환으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CFRP의 단점 — 공짜 점심은 없다

CFRP가 만능은 아닙니다. 몇 가지 중요한 단점이 있습니다.


  • 비용. 탄소 섬유 원사의 가격이 알루미늄보다 수 배에서 수십 배 비쌉니다. 항공급 탄소 섬유는 kg당 수십 달러이며, 이를 복합재로 가공하는 공정 비용까지 더하면 알루미늄 대비 기체 제조 비용이 크게 올라갑니다.

  • 제조 복잡성. 알루미늄은 절삭, 용접 등 표준 금속 가공으로 만들 수 있지만, CFRP는 프리프레그(Pre-preg, 수지를 미리 함침시킨 탄소 섬유)를 금형에 적층하고 오토클레이브(고압 고온 경화로)에서 경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조 시간이 길고 자동화가 어렵습니다.

  • 검사와 수리. 알루미늄 구조물은 균열을 육안이나 간단한 검사로 발견할 수 있지만, CFRP는 내부 층간 분리(Delamination) 같은 결함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초음파 검사 등 비파괴 검사가 필요합니다. 손상 시 수리도 알루미늄보다 까다롭고 비용이 높습니다.

  • 전도성. 탄소 섬유는 전기 전도성이 있지만 알루미늄만큼 좋지 않습니다. 낙뢰 보호(Lightning Protection)를 위해 추가적인 전도성 층이나 메시를 적용해야 할 수 있습니다.


양산 시대의 소재 전략

eVTOL이 연간 수백~수천 대 양산 단계에 진입하면 소재 전략이 바뀔 수 있습니다. CFRP의 가장 큰 약점인 비용과 제조 시간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활발합니다.


  • 자동 섬유 배치(AFP, Automated Fiber Placement). 로봇 팔이 탄소 섬유 테이프를 자동으로 적층하는 기술입니다. 보잉 787이 이 기술로 동체를 만들고 있으며, eVTOL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 비오토클레이브(Out-of-Autoclave, OoA) 경화. 기존의 대형 오토클레이브 대신 진공백과 오븐만으로 경화하는 기술입니다. 장비 투자 비용이 줄고 생산 유연성이 높아집니다.

  • 열가소성 복합재(Thermoplastic Composite). 현재 주류인 열경화성(Thermoset) 복합재와 달리, 열을 가하면 다시 성형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제조 시간이 극적으로 단축되고, 재활용도 가능합니다. 아직 항공 인증 이력이 적어 적용이 제한적이지만, 차세대 eVTOL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 소재 공급망은 간접 투자 기회가 됩니다. 탄소 섬유 제조사, 복합재 가공 장비 제조사, 비파괴 검사 장비 제조사 등이 eVTOL 양산의 수혜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5편에서 다룬 "곡괭이 전략"의 소재 버전입니다.


1kg을 줄이면 벌어지는 일

구체적인 숫자로 경량화의 가치를 계산해봅니다.

eVTOL의 일반적인 에너지 소비율을 가정하면, 기체 구조물 무게 1kg 감소는 대략 배터리 0.3~0.5kg 절감 효과로 이어집니다(무게 나선 효과 감안). 총 1.3~1.5kg 경감. 이것이 항속거리 약 0.5~1km 증가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한 대의 기체에서 수십 kg을 경량화하면 항속거리가 수십 km 늘어나고, 이는 운항 가능 노선 확대, 하루 운항 횟수 증가, 좌석당 비용 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연간 수천 대를 양산하는 단계에서 기체당 수십 kg 경량화는 전체 산업의 경제성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소재 기술이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Soo's View

소재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eVTOL 산업이 결국 "물리학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는 메모리를 더 사고, 서버를 더 추가하면 되지만, 물리 세계에서는 중력이 절대적입니다. 1kg은 1kg이고, 이걸 줄이려면 소재를 바꾸거나 설계를 최적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코드 최적화의 경험으로 말하면, 최적화는 "작은 개선의 누적"입니다. 한 번에 성능을 2배로 만드는 마법은 거의 없고, 1~2%씩 줄여나가는 과정의 합이 결과를 만듭니다. eVTOL 소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적인 신소재가 갑자기 나타나기보다는, 기존 CFRP의 제조 공정 개선, 설계 최적화, 부분적 신소재 적용이 점진적으로 무게를 줄여갈 것입니다.

시리즈 2를 마무리하면서, 기술에 대한 전체 판단을 정리합니다. eVTOL의 핵심 기술들(배터리, 모터, 자율비행, 안전성, 소재)은 모두 "가능하지만 아직 최적화 중"인 상태입니다. 비전공자로서 6편의 글을 쓰면서 공부한 결론은, "이 기술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언제, 얼마의 비용으로 되느냐"가 진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시리즈 3에서는 기술에서 기업으로 넘어갑니다. Joby, Archer, EHang, Lilium, Eve를 SEC Filing 숫자로 하나씩 뜯어봅니다. 기술이 좋아도 돈이 없으면 상용화 전에 쓰러집니다. 숫자가 말하는 진실을 확인하러 갑니다.



면책 조항: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본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필자는 eVTOL 섹터에 포트폴리오의 10~20%를 배분하고 있으나, 개별 종목 보유 여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 시리즈 2 — "비전공자가 파헤치는" eVTOL 핵심 기술